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오세티야 전쟁 (문단 편집) === 차포 떼고 선공을 한 조지아군 === 조지아군은 2007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일부 부대를 시작으로 무기 및 군사훈련 지원을 받으며 동구권에서 서구권으로 체계를 개편하는 시발점에 있었다. 문제는 그 서구화된 1선 군대는 다 [[이라크]]에 가 있었다는 것이다. 샤카슈빌리 정권의 친서방 정책과 이에 대한 서방권의 화답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샤카슈빌리의 조지아 정부는 서방 세계의 우호도도 쌓고 더 많은 지원도 이끌어내기 위해 [[이라크 전쟁]] 이후 치안이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재건지원단으로 자국군을 파병한다.[* 이 행위는 조지아와 함께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나토를 들어가길 원했던 [[우크라이나]]도 똑같이 한다. 우크라이나는 1천 600여명을 파병했다.] 이 파병규모는 초창기에는 800여 명이었으나 2007년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어 1개 여단 총 2,000여 명에 달했고 이는 이라크 파병국 중 전쟁 주도국인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3위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조지아 지상군 전투부대의 20~25%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샤카슈빌리나 조지아 군 수뇌부가 러시아와의 전면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런 대규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지만, 하필 그 시점에 전쟁이 터졌다. 개전 직후인 8월 9일 조지아 정부는 급히 이라크 파병부대에게 본국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애시당초 조지아 같은 소국에는 타국에 있는 자국군을 급히 본국으로 소환할 수단이 철저히 부족했다. 육로는 당연히 불가능, 항공로의 경우 이라크와의 거리는 그나마 가까운 편이었지만 수송기가 없었다. 자국 국적 민항사라도 있으면 여객기라도 징발했겠지만 역시 없었다. 급히 타 국적 민항사들에 전세기 임대를 요청했지만 자국도 아닌 타국 정부의 군사 목적 전세기 임대를 흔쾌히 수락할 항공사는 없다. 더군다나 조지아의 제공권을 바로 러시아가 쥔 상황에서 병력을 여객기로 나르다가는 러시아 전투기에 격추당할 뿐이었다. 그나마 개전 초기 일부 선두 부대가 (격추시켰다간 자칫 잘못하면 3차대전 찍어야 하는) 미군 수송기로 급히 본국으로 귀환하여 이라크 파병군용 사막색 위장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전선으로 향했지만 미국도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각오할 순 없었던지라 수송기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전면적인 철수 지원은 종전 후에나 이뤄졌다. 결국 예상 못 한 일이긴 하지만 하필 주력이 이역만리 파병을 가서 자국 방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데다, 기대했던 NATO 가입은커녕 전쟁 기간 동안 NATO나 미국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지아는 이라크 파병군을 정식으로 철군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약소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아주 포기할 수 없었던지라, 이듬 해에 병력 규모를 줄인 800여 명 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ISAF로 파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